풍물의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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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3-02-01 1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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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여기에는 우리의 역사(歷史)와 culture에 바탕한 잊었던 건전한 민족정신 문제가 담겨져 있다 잊었던 민족정신을 풍물(우리음악)을 통해 회복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풍물이라는 것이 우리 민중들의 생활, 심성(민족성)을 반영하고 여러가지 다른 요소를 포함(극적요소, 춤,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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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냐하면, 풍물이라는 것이 우리 민중들의 생활, 심성(민족성)을 반영하고 여러가지 다른 요소를 포함(극적요소, 춤,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의 역사(歷史)와 culture의 하나로 우리음악을 파악하려고 하지 않는 경향이 있다 우리는 음 현상으로만 이를 파악하려는 습성을 지니고 있다 이제까지 모든 음악을 음악형성 과정의 최종단계인 연주행위에 의해서만 이해하려고 배워 왔기 때문이다”
순서
풍물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많은 부분을 같이(포괄적으로) 다루어야 된다된다. 따라서 농악이라는 말은 일제시대 때 일본학자들에 의해 생긴 말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이 둘과 관계되지 않는 음악은 하나도 없다. 또 현재 사회에서도 가능할 수 있어야 하며, 이러한 뜻에서 좀더 적극적인 쓰임말이 필요하다.
“모든 음악은 인간의 culture와 역사(歷史)의 하나로 태어난다. 풍물이 음악적인 요소의 비중이 큰 것은 사실이지만, 풍물굿이 가지고 있는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한 뜻은 놀이, 춤, 재담, 노래, 연극 등이 나뉘어지지 않고 같은 마당에서 함께 어우러진다는 것이다.)
일본제국주의는 우리의 민속신앙을 말살(민족정기 말살정책)하고 농업장려의 목적에 한해서만 풍물굿을 허용했다.
미약하나마 이 data(資料)가 여러분들에게 풍물에 대한 애정과 관심을 더욱 촉발시키는 조그마한 불씨가 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글을 다룬다.
1870년대까지 판소리 춘향가에는 ‘두레굿’이라 쓰였는데, 일본제국주의의 농업 수탈정책의 하나인 농업장려운동으로 원각사의 협률사라는 단체에서 ‘농악(農樂)’이라 부르기 스타트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역사(歷史)적인 기록은 일제식민지시대에 대부분 소실되고 변조되었다. 다시 말해서 풍물은 우리 겨레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삶 그 자체였다라고 할 수 있다아
풍물,문화,역사
풍물도 우리음악의 범주(악기의 연주 측면만을 바라볼 때)라는 것을 인식하고 있다면 우리의 culture와 역사(歷史)를 바르게 보지 않고서는 풍물을 바르게 볼 수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하나. 명 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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풍물을 제대로 이해하고자 한다면 많은 부분을 같이(포괄적으로) 다루어야 된다.
농악이 글로 처음 나타난 것은 1936년 총독부에서 펴낸 ‘부락제(部落祭)’라는 책에서였다. ‘농악’이란 이름으로 신청을 해야만 굿판을 열 수 있었기 때문에 굿하는 단체나 마을들이 농악이라는 이름으로 공연신청을 한 데서 일반화되다가, 8.15 해방 이후 많은 학자들이 국악theory(이론)을 정리(arrangement)하는 과정에서 농악이라 부르게 되었다. 농악이란 말을 글자 그대로 풀이하면 ‘농민(농사꾼)의 음악’으로 여겨질 수 있다 원래 풍물굿이 농경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농민들 스스로 농악이라고 불렀던 적은 없었고 일제의 민족 말살정책의 하나로써 일본의 탈놀이 능악(能樂)의 발음인 ‘노가꾸’를 본떠서 농악이란 말을 만든 것으로 보인다.
그러므로 풍물을 이해한다라고 한다면 우리민족의 culture와 역사(歷史)와 동, 서양의 culture적 차이점 등을 두루 이해해야 조금은 보고, 듣고, 느낄 수 있을 것이다.
① 농 악
설명
- 우리음악, 그 맛과 소리깔 (신 대철 저)
풍물의 이해
풍물(우리음악)의 참 맛과 길을 회복함은 단순한 풍물(우리음악)애호의 문제가 아닐것이다.
다.
풍물은 총체적인(종합적이고 대동굿적) 성격을 갖고 있는데 농악이라는 말은 농민의 음악, 즉 장단이나 소리만을 나타내는 단순히 악기를 연주하는 것만으로 한정시켜 버린다. 다시 말해서 풍물은 우리 겨레의 삶과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고, 삶 그 자체였다라고 할 수 있다.


